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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he-스토리] 들리지 않지만 들려드릴 수 있습니다

音大 들어간 청각장애 손정우, 10년 가르친 허두리 총감독…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동행

귀에는 보조장치 하고 있지만 모든 소리 로봇 목소리처럼 들려 음정·박자 이해 힘들어
장애인 클라리넷 연주단서 ‘선생님이자 누나’ 허 감독 만나… 초등 4년때부터 희망을 연주
지난 3일 오후 9시 서울 서초동에 있는 음악 연습실 ‘베토벤 하우스’. 늦은 밤이었지만 약 20명의 학생이 모여 합주 연습을 하고 있었다. 잔잔한 관악기 선율이 약 20평 규모의 연습실을 가득 메웠다. 합주가 끝난 뒤 덩치 큰 남학생 손정우(19)군이 클라리넷을 들고 무대에 올랐다. 귀에 조그만 전자장치를 단 손군은 음악 감독 허두리(여·35)씨의 손짓에 따라 강약(强弱)과 박자를 조절하며 연주곡 ‘베니스의 사육제’를 솔로로 연주했다.
손군이 귀에 단 장치는 가수들이 반주를 정확히 듣기 위해 귀에 꽂는 ‘인이어(In-ear)’ 이어폰이 아니었다. 소리를 전자신호로 바꿔주는 음향 처리기였다. 손군은 이 장치를 달지 않으면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이다. 소리가 생명인 음악인에게 천형(天刑)이나 다름없는 청각장애를 갖고도 손군은 올해 강남대 독일음악학부에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장애인 특별 전형이 아니라 일반 전형으로 지원해 비장애인 학생들과 당당히 경쟁해 합격한 것이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음악 연습실에서 청각장애인 손정우(19)군이 클라리넷으로‘베니스의 사육제’를 연주하고 있다. 손군의 귀에 꽂혀 있는 장치는 소리를 전자 신호로 바꿔주는 음향처리기다. 오른쪽 위 작은 사진은 11년 동안 손군을 비롯한 청각장애 학생들에게 클라리넷을 가르쳐온 허두리(35)씨. /장련성 객원기자

날 때부터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손군은 여덟 살 때 인공 와우관(청각 신경에 전기적 자극을 줘 소리를 듣게 하는 장치) 수술을 받았지만, 비장애인보다 들을 수 있는 음역대가 좁다. 모든 소리가 로봇 목소리 같은 ‘기계음’으로 들리고, 다른 악기와 보조를 맞추기도 어렵다. 다른 사람들의 말도 입술 모양을 봐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그를 음악의 길로 이끈 건 ‘사랑의달팽이 클라리넷앙상블단’ 총감독 허씨다. 사랑의달팽이는 청각장애인들에게 보청기 등을 지원하고 재활을 돕는 단체로, 청각장애 학생들을 모아 ‘클라리넷 연주단’을 운영하고 있다. 허씨는 음대를 졸업한 직후인 지난 2006년 지인을 통해 우연히 이 단체를 소개받은 뒤 지금까지 11년간 이 연주단을 이끌어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이 연주단에 들어온 손군과는 10년째 호흡을 맞추고 있다.

허씨는 “청각장애 학생들을 ‘음악’의 길로 이끄는 건 일반 학생을 가르치는 것보다 10배 이상 어렵다”고 했다. 소리는 어렴풋이 들을 수 있다 해도 음정과 박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 연주단에도 많은 음악인이 봉사자로 자원했다가, ‘가르치는 어려움’에 지쳐 그만뒀다고 한다. 허씨는 “아이들이 장애 때문에 무시당하는 걸 볼 때마다 ‘조금만 더 가르쳐서 연주회 때 보여주자’라는 오기가 생겨 지금까지 하게 됐다”고 했다.
허씨는 손군을 인내(忍耐)로 가르쳤다. 합주 연습을 하다 손군이 박자를 놓치면 다른 연주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려가며 양해를 구했고, 틀린 부분을 수없이 반복하게 했다. 그래도 마음에 차지 않으면 몇 시간이고 ‘무보수’로 손군을 따로 가르쳤다. 허씨는 “정우에겐 너무 엄하게 대한 것 같아 미안하지만, 다른 장애 학생들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위해 유독 정우에게 힘든 연습을 많이 시켰다”고 했다.

손군에게 허씨는 ‘선생님이자 누나’ 같은 존재다. 어머니에겐 차마 말하기 어려운 상처들을 털어놓고, 함께 음악 연습을 하며 연주자의 희망을 키워왔다. 손군은 “‘말도 못 알아듣는 병신’이라며 머리에 침을 뱉고, 귀에서 보조 장치를 떼 버리는 친구들도 있었다”며 “감독님이 ‘기죽으면 지는 거다. 더 연습해서 잘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자’고 말씀해주셔서 포기하지 않 을 수 있었다”고 했다.손군의 목표는 베토벤처럼 유명한 음악가가 되는 게 아니다. 그동안 음악을 하면서 청각장애가 주는 현실적인 한계를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손군은 평생 음악을 놓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저 같은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음악가가 되고 싶다”며 “감독님처럼 다른 사람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음악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