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이야기

김창옥 교수와 아버지의 화해를 위한 여정 ‘들리나요?’

‘들리나요?’ 화해와 치유의 소리가.

영화 들리나요_2

유튜브 누적 8천만 뷰. 지난 19년간 7천 회가 넘는 강연을 통해 대한민국 대표 소통전문가로 자리매김해 온 김창옥 교수.
‘소통’과 ‘목소리’를 주제로 이야기를 해왔던 그에게도 풀지 못한 소통의 숙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청각장애인 아버지와의 관계인데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들은 딱지가 앉고 떨어지길 반복해 마음속에 굳은살처럼 단단한 벽을 세웠습니다.

 

지금은 아버지로부터 떨어져나와 성공한 명강사가 되었지만, 그런 그를 향해 사람들은 “행복을 말하면서도 어딘지 슬퍼보인다”고 표현하곤 했습니다. 아버지를 향해 세운 단단한 벽이 사실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김창옥 교수는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아버지와 화해하기로 합니다.
그러기 위한 첫 번째 단계, 아버지에게 소리를 선물하기로 하면서 영화 ‘들리나요?’는 시작됩니다.

소통이 안 되면 고통이 온다

김창옥 교수는 고향에 내려가 아버지를 만나 인공와우 수술을 할 수 있는지 검사받아보라고 권합니다.

 

인공와우라는 게 있대, 아버지 귀를 검사 한 번 받아보는 게…
막둥이가 해주면 좋제.
내가 해줄게요, 아버지.
(활짝 웃으며) 누가 해줄 사람 없는가, 난. 막둥이가 해주면 수술하고.

영화 들리나요_3

그동안 보청기를 껴도 잘 들을 수 없었다는 아버지.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는 말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활짝 웃는데요. 그 모습을 본 김창옥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가 어린아이처럼 웃는 모습을 딱 본 거야. 오늘.
귀 해주겠다고 할 때. 귀가 들릴 수 있다고 할 때.”

 

그 모습을 봤을 때 어떤 느낌이었느냐는 질문에 김창옥 교수는 “글쎄…” 하며 말을 아낍니다. 하지만 붉어진 눈시울을 통해 미처 감추지 못한 감정들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김창옥 교수가 강연에서 자주 인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 ‘소통이 되면 고통이 없고, 소통이 안 되면 고통이 온다’는 뜻입니다.

영화 들리나요_1

아버지와의 불통이 고통이 되었던 아들.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자(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말에)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아버지.

두 사람의 모습만큼 이 구절을 잘 표현하는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 곧 90세, 소리를 들어 뭐해?”

아버지가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큰돈이 들어가는 인공와우 수술을 해야 합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부담을 줄까 걱정돼 수술을 말립니다.

 

“마음만 있어도 돼. 아버지 이때까졍도 살아가꼬 90줄이 다 돼가꼬, 인자 쬐까 들으라고 돈 많이 주고… 죽어불면 뭐 할 거야.”

 

아마 대다수의, 난청을 가진 어르신들이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이 들어서 큰돈 들어가는 보청기 끼면 뭐 해?’ ‘인공와우 수술 비싼데 자식들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소리가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오히려 어르신들은 오랜 세월을 살아왔기 때문에 소리가 주는 행복함, 소리를 잃은 후의 상실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영화 들리나요_5

그뿐만 아니라 난청이 생기면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치매 발병률도 높아집니다. (2017년 ‘The Lancet’ “치매 요인 1위는 난청, 심한 난청의 경우 치매 발생률 5배”) 난청을 오랫동안 방치하면 언어의 이해와 입의 근육을 담당하는 대뇌 피질이 축소되고, 이는 인지 기능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영화 들리나요_4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아버지는 손주들이 재롱을 부리는 동영상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지만, 정작 소리는 듣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얼마나 자녀들과 손주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을까요?
하지만 아버지가 소리를 찾게 되면 가장 먼저 듣고 싶은 소리는 자녀나 손주의 목소리가 아닙니다.

 

“‘귀가 들리시면, 70년 만에, 누구의 소리를 제일 먼저 듣고 싶으세요?’ 그랬더니 저희 큰 누나가 미래인데 ‘미래 엄마 목소리를 한 번도 못 들어봤어.’ 엄마 목소리를 제일 듣고 싶대요. 엄마가 ‘염병’이라고 얘기하셨어요.”
-김창옥 토크콘서트 中-

 

사랑하는 가족의 목소리를 듣는 것, 나이 90살이 다 되어서도 소리에 대한 소망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은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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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마주보며 천천히, 또박또박

아버지는 수술을 앞두고 병원에서 얼마나 작은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지, 얼마나 단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여러 가지 검사를 합니다. 아버지는 보청기를 꼈지만 바로 앞에서 북을 두드려도 잘 듣지를 못하는데요.

 

영화에서는 그런 아버지와 소통하기 위해 자녀들이 하는 특별한 행동을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입 모양을 보여주며 천천히, 반복해서 말을 하고, 아버지가 잘 이해하지 못하면, 손바닥이나 허공에 글씨를 쓰죠.

영화 들리나요_7

청각장애인은 소통할 때 상대방의 입 모양을 보고 대화의 힌트를 많이 얻기 때문에, 청각장애인과 대화할 때는 입을 보여주는 게 좋습니다. 또, 무조건 큰 소리로 말하는 것보다 오히려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해주는 게 더 알아듣기 쉽습니다.

 

김창옥 교수의 가족들은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아버지와 오랜 시간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청각장애인과 소통하는 법을 익혀온 것이겠죠.

“우와… 우와… 우와…”

아버지는 가족들의 기도 속에 무사히 수술을 마쳤습니다. 수술 부위가 회복되기를 기다린 끝에 드디어 인공와우 외부기기를 착용하는 날이 왔습니다. 인공와우를 작동시켜 ‘스위치 온(Switch On)’을 하고, 소리를 처음으로 듣는 날이기도 하죠.

 

붕대를 풀고, 인공와우 외부기기를 착용하고, 스위치를 켭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듣게 됩니다.

 

처음 소리를 들은 아버지는 오직 “우와… 우와…” 감탄사만 연발합니다. 세상 어떤 단어로도 소리를 되찾았을 때의 감격을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겠죠. 그 모습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얼굴에도 환한 웃음이 가득합니다.

영화 들리나요_8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지만, 그 소리가 무슨 의미인지 알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제 아버지는 소리 듣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라도 아내, 자녀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 더욱 많은 대화를 해야 합니다.
언어재활도 하면서 가족 간 막혔던 소통도 다시 회복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들 김창옥 교수와도 이로써 한층 가까워질 수 있겠죠?

 

영화의 마지막에 김창옥 교수와 아버지가 전화 통화를 하는 장면,
이제 들을 수 있게 된 아버지가 “막둥이냐, 아빠야” 라고 전화를 받는 장면은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줍니다.

영화 들리나요_9

영화 ‘들리나요?’는 아버지와 아들이 단절을 극복하고 소통의 물꼬를 트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며, 인공와우 수술을 통해 아버지가 소리를 되찾는 모습이 마치 오랜 기간 멈춰 있던 가족 간의 대화가 다시 시작되는 걸 상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화는 이해를, 이해는 화해를 가져오겠죠.

 

인공와우 수술 과정(수술 전 검사, 수술, 수술 후 맵핑)도 세세히 보여주기 때문에 그 과정이 궁금하신 분들이 참고하기에도 좋은 영화, ‘들리나요?’
오늘 한 번 집에서 천천히 감상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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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대외협력팀 김슬기

자료제공 | (주) 트리플픽쳐스

발행 | 2020-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