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Job

나의 비결은 최선을 다해 도움을 요청하는 것

청각장애인 이동희 씨는 얼마 전, 에세이 ‘안 들리지만, 그래도’를 출판했습니다. 이 책에는 ‘평생 보청기를 껴야만 들을 수 있는 운명을 짊어진 청각장애인’으로서 살아온 이야기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는데요.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진솔하고도 유머 있는 문장으로 담아낸 매력 덕분에 애초 그의 예상보다 좋은 판매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출판사를 세우는 것부터, 원고 작성, 교정, 편집, 인쇄, 유통에 홍보까지 모든 과정을 이동희 씨 혼자서 처음부터 배워나가면서 진행했습니다. 소통의 불편을 안은 채 어떻게 그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었는지 궁금했는데요.
이동희 씨를 만나 글을 쓰는 작가로서, 출판사 대표로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청각장애인&job소개

<안 들리지만, 그래도>

“비행기를 탔는데 태평양 한복판에서 추락하면 어떡하지? 내 보청기는 방수가 안 되는데? 바다에 떨어져도 완벽하게 보호되는 케이스는 없을까? 추락 직전에 보청기를 넣어두고 꽉 잡고 있으면 아무 걱정이 없을 텐데.”

 

어느 날 친구와 이야기를 하던 도중, 이동희 씨는 목숨이 위급한 상황이 오면 보청기부터 챙길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친구는 자신은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았다고, 가늠조차 되지 않는 삶이라며 청각장애인으로서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을 책으로 써보라고 권유합니다. 그 제안을 듣고 원고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 드디어 이동희 씨는 청각장애인으로서 살아온 삶을 책 <안 들리지만, 그래도>에 옮겼습니다.

사본 -이동희_1

알람 소리를 듣기는커녕 전화통화도 못 하고, 짜장면 한 그릇조차 스스로 시킬 수 없고, 콜센터에 직접 문의할 수 없어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몇 날 며칠을 기다려야 했던 시간들. 카페에서 무슨 노래가 울려 퍼지는지 모르고, 술자리에서 나누는 대화에 선뜻 어울리지도 못하는 삶. 내가 사는 세상은 그랬다.
(중략)
어떻게 살았느냐고? 그러게, 나 어떻게 살았더라. 그냥 살았다. 지미는 ‘들리지 않는 삶’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는 ‘들리는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안 들리지만, 그래도> 10p

출판의 시작은 텀블벅(예술, 문화 콘텐츠를 다루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펀딩을 하는 것이었는데요. 펀딩 첫날에 목표액 100%를 달성하고 최종적으로 후원자 300명, 펀딩액을 400% 넘게 달성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그 후 무사히 책을 출판하고 약 반년이 흐른 지금, 작가로서 예상했던 것만큼의 성과를 거뒀을까요?

 

“펀딩을 시작할 때만 해도 최대 300부 정도만 판매될 거라고 예상했는데 다행히 책이 입소문을 잘 타서 아직도 주인을 잘 찾아가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판매량보다도, 제가 직접 글을 쓰고, 편집하고, 인쇄, 유통 다 도맡아서 해보니까 그걸 하는 과정에서 제가 몰랐던 분야의 사람들도 알게 되고 많은 걸 배웠어요. 그게 저로서는 훨씬 더 가치 있었고요. 결론적으로 충분히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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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딩 후원자들과 재미있는 방식으로 소통한 것도 성공의 비결이었겠죠

진정성 있는 이야기만큼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건 없을 겁니다. 거기에 더해 이 책을 읽다 보면, 세상을 향해 분노하게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슴이 푸근해지고 심지어 행복해지기까지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감동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하게 되는 게 아닐까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있지 않으면 대화를 할 수 없는 사이. 전화통화를 못 해서 영상통화만 해야 하는 사이라는 것이.
황홀하지 않은가. 서로의 눈동자에 서로가 비치고, 내 눈이 당신의 입 모양을 따라 말을 읽어내는 것이, 안면 근육이 미세하게 움직이며 시시각각 다채롭게 달라지는 표정을 읽어내는 것이, 그래야만 우리의 대화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안 들리지만, 그래도> 2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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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의 딸로 알려진 유튜브 크리에이터인 햄연지 씨도 책을 소개했어요

사진 출처: 햄연지 유튜브

최선을 다해서 도움을 요청하고 기꺼이 배울 것

왜 이렇게 좋은 글을 기성출판사와 계약하지 않고 스스로 출판사를 차려 책으로 엮었는지 물어봤습니다. 이동희 씨도 처음에는 여러 출판사의 문을 두드려 봤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학과 관련 없는 미술을 전공했고, 책 한 권 낸 적 없는 청각장애인의 원고를 받아주는 출판사가 별로 없었습니다. 서너 군데 받아주는 곳이 있었지만, 계약 조건이 너무 열악했죠.

 

그래서 직접 출판사를 만들어 책을 내기로 했습니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고 개척하는 게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보다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신의 이야기가 공개되지 못하고 사라져야 한다는 두려움이 더욱 컸기에 용기 있게 한 발을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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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잘 팔리기 위해서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홍보를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한데요. 1인 출판으로서 이렇게 성공을 거두기까지 특별한 홍보 비결이 있었는지 물어봤습니다.

 

“텀블벅 홍보 페이지 만들 때 작업실 동료들이 조언을 많이 해줬어요. 그리고 제가 아르바이트하는 편의점의 야간 근무자분께 원고를 보여드렸더니 그분이 퇴근 시간 1시간 넘겨서까지 읽으면서 조언을 해주셨고요. 연예인분들께도 ‘책 나왔는데 한 번 읽어봐주시면 좋겠다, 당신의 영향력을 제게도 좀 빌려주실 수 있느냐’고 연락드렸더니 진심이 통했는지 도움 주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책을 내면서 도움받지 않은 사람이 없어서 감사한 마음밖에 없습니다.
저의 마케팅 비법을 굳이 말하자면 ‘최선을 다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배워야 할 점은 기꺼이 배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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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아르바이트에 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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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때로는 자신 있게 용기 내는 것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청각장애에 대한 편견도 있었습니다.

 

이동희 씨가 친구와 함께 패밀리 레스토랑 홀서빙 아르바이트를 지원했을 때의 일입니다. 면접 담당자가 동희 씨의 청각장애를 문제 삼았습니다. 정말 홀서빙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밝게 웃으면서 잘 해보겠다고 대답했는데도 결국 친구만 홀서빙하고 동희 씨는 주방에서 일하는 것으로 결정 났습니다.

 

“노력하면 된다, 얼마든지 잘해보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는데도 처음으로 제 의지가 관철되지 않는 경험을 하면서 그때 이후로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어요. 그렇지만 여길 그만두고 나면 다른 일을 또 구할 수 없겠지 하는 생각에 4년 동안 그만두질 못했어요.”

 

그렇게 자신감을 잃고 사람 응대하는 일을 피하던 어느 날, 집 앞에 새로 생긴 편의점의 구인공고를 봤습니다. 지난 시간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고자 용기 내어 이력서를 냈는데, 편의점 점장님은 그의 청각장애를 알고도 “뭐 어때요, 해보면 되죠.” 하며 채용했습니다.

 

일하게 된 첫날, 점장님은 카운터에 작은 화이트보드를 비치했습니다.

 

우리 근무자님은 자그마한 청각장애가 있습니다. 손님 여러분의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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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손님들은 카운터에만 오면 입을 큼직큼직하게 움직이고, 환하게 웃고, 목소리도 밝아졌습니다. 목청이 떠나가도록 “수고하세요” 인사를 남겼습니다. 잘 못 듣는 동희 씨를 대신해 다른 손님의 질문에 대답해주는 단골손님들도 생겼습니다. 동희 씨는 점장님과 손님들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고 합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한 것도, 편의점에서 일한 것도 모두 같은 동희 씨이지만 그를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상상 속 두려움은 현실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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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 씨는 다양한 일에 도전해봤습니다. 미술학원 일일 모델, 음식점이나 패밀리 레스토랑 주방일, 가정집 인테리어, 출판사 인턴……. 그 시간을 보내며 청각장애인으로서 겪었던 어려움은 무엇이었는지 물어보자 그는 곧바로 ‘정보를 접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개 정보들은 말을 통해 전달이 돼요. 예를 들어 대학생활을 편하게 하는 팁, 이 수업은 어떻게 들어야 하고, 교수님은 어떤 분이라든지 하는 내용은 주로 선배들과의 만남에서 듣게 되잖아요. 직장생활을 할 때도 이 회사의 분위기는 어떤지, 저 상사는 어떤 분인지 주워들으면서 적응을 해나가는 건데 저 같은 경우는 그런 이야기들을 쉽게 들을 수 없다 보니까 어려움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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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를 얻지 못하는 것은 두려움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동희 씨는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자신감도 생기지 않는 거라고, 용기를 내지 않는 건 청각장애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정보를 접할 수 없으니 무서울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일은 막상 해보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고, 할 만하고, 내가 상상했던 것만큼 두렵지 않더라고요. 이번에 출판사를 꾸려서 책을 낸 것도 그렇고요. 그걸 뼈저리게 느끼게 되니까 과거에 그렇게 두려워했던 게 굉장히 미련이 남고 후회가 돼요.”

 

이동희 씨는 어린 청각장애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한 청각장애 선배들을 만나고 대화하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청각장애 학생들이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자신 있게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돕는 현실적인 조언과 응원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동희 씨는 책을 내고 싶은 청각장애 청소년들이 만약 도움을 요청한다면 도울 수 있는 것은 얼마든 돕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지만 아직 저도 배울 게 많아요” 라고 수줍게 덧붙였습니다.

청각장애인&Job - '안 들리지만, 그래도' 작가 이동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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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영상 | 대외협력팀 김슬기

사진 | 대외협력팀 김상혁

발행 | 2021-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