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달팽이관 수술지원Story

내 영혼 속 날개는 꺾이지 않아

지난 9월, 사랑의달팽이에 인공와우(인공달팽이관) 수술로 남들보다 귀가 2개나 더 많아져서 더 특별해졌다는 편지를 보내주었던 지혜연님. 당시에는 지혜숙이라는 가명으로 소개해드렸는데요.
지혜연님은 성악을 전공하고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다가 유전성 난청으로 청력을 잃게 되어 인공와우 수술을 했습니다. 앞으로 청각장애인 배우로 활동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겠다는 지혜연님의 편지는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었는데요. (지혜연님의 편지를 다시 읽고 싶다면 → 저는 더 특별해졌어요)
직접 만나서 난청과 수술로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에 인터뷰 요청을 했습니다. 실제로 만난 지혜연님은 아주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매력적인 분이었는데요.
지혜연님의 이야기,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뮤지컬 배우를 꿈꾸던 중 받은 난청 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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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연님은 서울에 수학여행을 갔던 고등학생 시절, <아가씨와 건달들> 뮤지컬을 보고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게 내 길이구나, 클래식보다 더 재미있겠다’ 하는 생각에 뮤지컬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했는데요. 대학을 뮤지컬과로 가고 싶었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해오던 성악을 먼저 제대로 하고 가는 게 좋다는 성악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성악과로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해 달리던 대학교 4학년 어느 날, 졸업 공연을 앞두고 친구들과 수영장에 놀러 갔다가 귀가 좀 아파 동네 이비인후과에 갔습니다. 단순한 중이염인 줄 알았는데 청력 검사를 한 후 듣게 된 의사 선생님의 말이 충격적이었습니다.

 

“큰 병원에 가서 청력검사를 하셔야겠어요.”
“왜요? 중이염 아닌가요?”
“전공이 뭔가요?”
“저 성악하는데요.”
“환자분 이제 노래 못하는데.”

 

뮤지컬 배우만 바라보며 오랫동안 열심히 달려왔는데 난청이라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지혜연님은 거리를 걸으며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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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병원마다 찾아다녀 봤지만 급성 난청이라는 진단뿐, 병명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유전성 난청을 연구하는 교수님을 만나, 유전성 난청이라는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유전성 난청도 발병이 빨리 되는 사람이 있고, 늦게 되는 사람이 있고, 아니면 아예 발병이 되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어린 나이에 발병이 빨리 됐고, 그러다 보니 진행도 빨랐어요. 거기에 더해 음악을 하면서 고음도 많이 부르고, 이관개방증에 턱관절 문제도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엄마는 미안하다고 하시죠. 건강하게 낳아주고 싶었는데 미안하다고. 그런 말씀 마세요라고 그랬죠.”

 

난청 판정에도 불구하고 지혜연님은 뮤지컬 배우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청력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게 아닌 이상, 할 수 있는데 까진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무대에 서기 위해 연극을 통째로 외우다

“청력을 갑자기 잃은 게 아니라 서서히 잃었기 때문에 저는 난청이란 걸 인정하는데 좀 오래 걸렸어요. 그래서 보청기도 끼고 약도 먹으면서 공연을 계속 했죠.

지혜연님은 처음에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누가 말을 걸어도 잘 못 듣고 가만히 있으니까 시크하다든지, 남을 무시한다는 오해를 받는 일이 반복되자 아예 연습을 앞두고 배우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귀가 안 좋다는 이야기를 먼저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귀가 좀 안 좋아서 보청기를 끼는데 잘 못 알아들을 때가 있으니까 오해하지 말아달라고 얘기를 하면 다들 ‘아, 그래서 네가 대답을 안 했구나’라고 이해해 주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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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도로시밴드’ 활동 모습

청력을 점차 잃어가는 가운데 연기를 계속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얼굴을 마주 봐야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데, 무대에서는 대사를 하는 배우를 등지고 있어야 하는 일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혜연님은 연기를 하기 위해 연극을 통째로 머릿속에 넣었습니다.

 

“어떤 대사가 나오기 전에 누가 어떤 행동을 한다, 어떤 대사를 한다는 걸 외우는 거죠. 다른 배우들 연기톤, 연기스타일도 외우고. 그래야 연기를 할 수 있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저도 모르게 시야가 많이 넓어졌어요. 작품을 볼 때 왜 이때 이 조명이 나오고, 이 음향이 나오는지 파악이 되면서 다음 씬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이 되더라고요.”

 

지혜연님은 청력을 잃는 만큼 넓은 시야를 얻을 수 있었다, 많이 잃었지만 그만큼 또 많이 얻을 수 있었다며 활짝 웃었습니다.

첫 번째 인공와우 수술, 그리고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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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청기를 끼고 노력을 해도 청력의 이상은 계속됐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양쪽 귀의 음정이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음을 들어도 한쪽 귀는 도로 듣고, 한쪽 귀는 레로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확한 음정을 내기 어려워 노래를 부를 수 없었습니다.

 

고음부터 점점 안 들리더라고요. 원래 음은 라인데 저는 파로 들리는 거예요. 점점 음정이 낮게 들리는 거죠. 사람 목소리도, 제 목소리도 점점 낮아지고. 고음이 들리긴 하는데 정확한 음정을 모르는 거죠.”

 

결국 왼쪽 귀의 인공와우 수술을 결심했습니다. 주변의 응원과 기대에 지혜연님은 ‘수술하면 굉장히 좋아지겠구나, 노래도 다시 할 수 있겠구나’라고 막연히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수술 후 소리를 듣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소리를 처음 듣는데… 스타워즈의 바퀴 달린 기계가 ‘으으어어’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거예요. 정말 충격 먹었거든요. 그리고 수술 하루 전까지 공연을 했는데, 그 동안 제 발음이 너무 안 좋아져서 외국인이 한국어를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더라고요. 그것도 수술 후에야 알았어요. 음악도 하나도 안 들리고 도레미 소리 하나 못 내니까… 사람들을 만나기 싫었어요. 우울증이 정말 심하게 왔죠.

양쪽 귀, 소리를 되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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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귀를 수술한 후에도 배우 활동을 했지만 한쪽 귀로만 들으며 연기를 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결국 오른쪽 귀도 수술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오른쪽 귀 수술하고 맵핑(소리를 편안하게 들을 수 있도록 조정하는 작업)을 했어요. 왼쪽 귀 기계를 빼고 오른쪽만 착용하고 얘기를 하는데, 교수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는 거예요. 제가 너무 잘 들으니까 교수님이 처음엔 제가 양쪽 다 끼고 있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교수님, 저 오른쪽만 끼고 있어요.’ 하니까 엄청 놀라셨어요.”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지혜연님은, 왼쪽 귀 수술했을 때와 달리 별 기대를 하지 않아 부담감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여기에 더해 담당 교수님의 든든한 응원과 따뜻한 관심도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소리를 잘 듣다가 갑작스러운 난청으로 인해 성인이 되어 인공와우 수술을 한 지혜연님. 인공와우로 듣는 소리는 실제 귀로 듣는 소리와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던 점을 물어봤습니다.

인공와우로 듣는 소리는 어떨까? Q&A

 

Q. 양쪽 귀가 수술 시점이 다른데, 제 말소리는 어떻게 들리나요?
A. 왼쪽 귀는 그동안 맵핑도 많이 하고 훈련이 많이 되어 있어서 이제 사람 목소리처럼 들리고, 오른쪽 귀는 수술한 지 얼마 안 돼서인지 아직은 기계음처럼 들려요. 말하자면 오른쪽 귀는 졸라맨 목소리랄까, 테이프 빨리 감기 할 때처럼 들리는데, 계속 듣다 보면 좋아지겠죠.

 

Q. 처음 기계음처럼 들리던 게 언제부터 사람 목소리로 들리기 시작하나요?
A. 어느 순간에 딱 사람 목소리구나, 하는 게 아니고요. 맵핑을 꾸준히 하면서 내가 편하게 들을 수 있게끔 계속 요구를 해야 해요. 그래야 기계소리가 들리는 부분을 조금씩 조금씩 고치면서 사람 목소리처럼 인식하는 거예요. 계속 훈련하는 거죠.

 

Q. 음악은 어떻게 들리나요?
A. 지금까지 노래를 몇 개 들어봤는데, 예전에는 음정이 다 똑같이 들렸어요. 그런데 지금은 조금 음정이 구분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 재활을 계속하면 좀 더 음정이 정확하게 들리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내 마음 속 날개는 꺾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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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한 귀퉁이에서 인터뷰 내내 자고 있던 예쁜 강아지

지혜연님은 그동안 코로나와 수술 때문에 공연을 쉬었지만 올해 안에 무대에 다시 올라가는 게 목표라고 말합니다.

 

“5~60대까지 연기하고 싶은데 아직 배우로서 활동을 많이 하지 못했어요. 지금까지는 무대 연기 위주로 활동했지만 앞으로는 TV 같은 매체 쪽으로 나가고 싶어요. 곽도원 배우님처럼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멋지게 활동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누군가에겐 용기를 줄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지혜연님은 다시 음악을 할 수 있게 되면 가장 부르고 싶은 노래로 뮤지컬 <엘리자벳>의 ‘나는 나만의 것’을 꼽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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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꿈을 위해, 그리고 누군가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배우의 길을 계속 걸어가겠다는 지혜연님.

 

‘나는 나만의 것’ 노래 가사처럼, 영혼 속 날개를 활짝 펴고 멋지게 날아오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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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대외협력팀 김슬기

사진 | 복지사업팀 이인환

발행 | 2020-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