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이야기

‘베니’와 함께 그녀가 여행하는 법

책 <거기에 가면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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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듣기만 해도 설레는 단어지요.
익숙한 곳이 아닌 내가 잘 모르는 곳에 갔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즐겁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와 맛으로 느끼는 과정은 여행을 더욱 풍부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런데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들은 여행을 어떻게 할까요?
낯선 땅에서 낯선 언어로 소통하는데 있어서 비장애인보다 더 힘들지는 않을지, 혹은 여행지에서의 아름다운 소리를 잘 듣지 못해 남들보다 여행의 즐거움을 덜 느끼지는 않을지 궁금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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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궁금증을 가진 분들은 귀가 큰 토끼 ‘베니’를 탄생시킨 구경선 작가의 신작 <거기에 가면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를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청각장애인 여성이 즐겁게 세계를 여행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청각장애와 시각장애를 안고 떠난 여행

구경선 작가는 두 살에 열병을 앓고 후유증으로 청력을 잃었습니다. 귀 큰 토끼 ‘베니’는 그런 구 작가의 소망이 녹아있는 캐릭터입니다.

귀가 크고 청력이 발달한 토끼가 자신 대신 세상의 소리를 많이 들어줬으면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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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위즈덤하우스 유튜브)

설상가상, 구경선 작가는 현재 시력도 서서히 잃어가고 있습니다. 망막색소변성증, 시각세포가 손상돼서 점차 시야가 좁아지고 결국 시력을 잃게 되는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인데요.
현재 남은 시야는 지름으로 8.8cm 정도. 그 이상 시야가 좁아지면 혼자 다니기도 어려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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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구 작가는 더 볼 수 없게 되기 전에 여행을 떠났습니다.

 

평창, 해운대와 같은 국내여행부터 시작해서 러시아, 프랑스, 핀란드, 태국 등 해외 여러 나라를 직접 밟았는데요. 그 여행의 이야기를 모아 엮은 게 바로 <거기에 가면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라는 책입니다.

잘 알아들어서 장해요. ‘쌍따봉’

‘베니’는 여행지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말을 걸던 사람들은 이내 베니의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요. 그때마다 놀라운 일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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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사람들은 베니의 말에 온 마음을 기울여 집중해 듣습니다. 정성껏 설명한 후엔 베니가 잘 알아들었는지 여러 번 확인하고 따뜻한 미소를 머금은 채 양손으로 ‘따봉’을 합니다. 마치 잘 알아들어서 장하다고 칭찬하듯이 말이죠.

 

우간다에서 만난 한 백내장 환자는 베니가 안약을 넣으며 수술을 도와주자 아주 천천히 입모양을 크게 해서 “T h a n k  y o u”라고 말합니다.

 

책에서는 베니가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외국어로 얘기하는 사람과 무리 없이 소통하는 모습도 그려집니다. 만약 비장애인이었다면 영어를 듣는 순간 울렁증이 생겨서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진 않았을까요?

베니의 손을 잡고 함께 가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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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 막연히 가지고 있던 ‘청각장애인이 여행을 하는 건 힘들지 않을까’ 하던 편견이 서서히 깨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 그대로, 베니의 여행은 그녀 자신 뿐 아니라 책을 읽으며 함께 여행하는 우리에게도 새로운 눈을 가지게 해주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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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에는 베니가 또 다른 토끼의 손을 잡고 구름 너머 이어진 길로 이끌고 가는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베니의 손을 잡은 건 누구일까요?

 

어쩌면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여행하는 걸 두려워하던 또 다른 베니는 아닐까요?

 힘들 때도 있지만 저는 멈추지 않을 거예요.
저와 함께 한 걸음 가보지 않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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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대외협력팀 김슬기

발행 | 2020-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