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이야기

[소리칼럼] 아이에게 필요한 건 죄책감이 아닌 사랑이다

‘쿵!’ 두꺼운 책이 거실 바닥을 울리며 떨어졌지만
아이는 그저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평화로운 집안의 풍경이었지만
두 사람은 무언가 달라졌음을 느끼고 말았다.

 

아이는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면서, 자신을 끔찍이도 사랑해줄 두 사람과 조우했다. 두 사람은 세상에 나온 아이를 두 손으로 받아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환한 미소만큼이나 아이의 미래도 분명히 밝고 쾌청하리라 확신했다. 아무런 고통과 걱정 없이 자라서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될 것이라고, 아이를 둘러싼 모든 이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이가 두 돌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모든 이들의 바람이 무색하게 아이에게 그늘이 드리웠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고열이 들이닥쳤다. 손 쓸 새도 없이 열은 40도까지 치솟기 시작했다. 부모는 울면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중환자실에서 집중 관리를 받고서야 간신히 아이의 열은 점점 내리기 시작했다. 완쾌했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은 뒤에야 세 사람은 그리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구름 한 점 없이 아주 맑고 눈부셨던 날. 공기마저 포근해서 온 집안의 창문을 활짝 열어두어 집 안에 시원한 바람이 솔솔 통하던 오전이었다. 엄마는 아이를 푹신한 포대에 싸서 마룻바닥에 내려두고 곁에서 마른 빨래를 개고 있었다. 아빠는 거실의 책장에서 이리저리 책을 분류에 맞게 진열하며 먼지를 청소하고 있었다. 그러다 아빠의 실수로 두꺼운 책 한 권이 ‘쿵!’하고 거실 바닥에 떨어졌다. “아이쿠.” 아빠는 괜히 한 번 엄마의 눈치를 보고는 책을 다시 주워들었다. 엄마는 아빠를 한 번 흘겨봐주고는 아이가 놀라지는 않았는지 살폈다. 아이는 그저 헤실헤실 웃으며 천장에 드리운 그림자들을 손으로 잡아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평화로운 집안의 풍경이었지만, 두 사람은 무언가 달라졌음을 느끼고 말았다. 그렇게 호기심이 많던 아이가 소리에 반응하지 않다니. 불길한 가슴을 애써 부여잡고 두 사람은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 뿐이었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
두 사람은 아이의 앞에 서서 온몸으로 모든 화살을 맞아냈다.
아이에게 두 사람의 등은 거대한 태산 같았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죄책감이 아닌_1

이동희 작가의 어린 시절

그날로부터 아이의 운명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의사는 지난번 고열 때문에 아이의 청신경이 완전히 녹아내려 청력이 소실되었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그러니까 이제 아이는 ‘청각장애인’이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꼬리표를 달게 되었다는 말이다. 두 사람은 아주 오랜 시간을 부둥켜안고 더 울어야만 했다. 자책하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면서.
그런 두 사람에게 구세주처럼 다가온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옥희’라 소개했다. 옥희 선생님은 부모를 다독여주고, 정밀한 청력검사와 함께 아이에게 맞는 보청기를 맞춰주셨다. 부모는 암담한 마음으로 말했다.
“이제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전부 제 탓인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해요. 어떡해요.”

옥희 선생님은 독하게 마음을 먹으라고 했다.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 뿐이었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아이를 키우라고 강조했다.
두 사람은 정신을 부여잡고 청각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가 평범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키우기로 했다. 청각장애 아동들을 키우는 부모 모임에 참여하기도 하고, 청각장애인에 관한 다양한 책과 논문을 읽으며 공부를 시작했다. 아이를 무릎에 앉혀두고, 한글을 읽고 발음하는 법을 완벽하게 터득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아이의 손을 배와 목에 대고 발음할 때 울리는 진동을 직접 느낄 수 있게 가르쳤다. 아이가 장애로 인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도록 많은 경험을 시켜줬다. 제 장애로 인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홀대받지 않도록 겸손과 예의를 가르쳤다.
기특하게도 아이는 부모가 가르치는 것들을 쏙쏙 흡수했다. 유치원에 들어가기도 전에 한글을 뗐고, 미대 출신이었던 부모의 재능을 물려받아 그림에도 소질을 보였다. 동네 이웃과 선생님들에게 인사성이 바른 아이라고 소문이 났다. 아이는 그들이 원하던 대로 장애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지 않은 채 자라났다. 두 사람은 아이에게 너를 놀리는 친구가 있으면 도망치지 말고 맞서 싸우라고 강조했다. 언제까지고 네 뒤에는 우리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아이는 몸이 성할 날이 없었다. 귀머거리라고 놀리는 친구와 매번 치고받고 싸우는 바람에. 그때마다 두 사람은 아이의 앞에 서서 온 몸으로 모든 화살을 맞아냈다. 아이에게 두 사람의 등은 거대한 태산 같았다.
다행히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던 아이에게도 좋은 친구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이는 같은 반 여자아이와 연애도 시작하며, 학교 앞 문방구에서 1000원짜리 싸구려 커플링을 나눠 끼며 수줍어하기도 했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선량한 동네 이웃들의 호의도 아이의 자신감을 채워줬다. 아이는 때론 학원 수업에 가지 않고 친구들과 몰래 피시방 같은 곳을 다녀오다가 걸려서 부모를 속상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두 사람이 그토록 바랐던 ‘평범하고 행복한’ 시간을 누렸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죄책감이 아닌_2

이동희 작가의 어린 시절

훌쩍 건강하게 다 큰 아이는 혹시나 사랑하는 두 사람에게 물었다.

“엄마아빠는 내가 청각장애를 가지게 된 걸 알고 어땠어?”

“슬펐지. 우리 때문인 것 같아서 또 괴로웠지.”

아이는 뭘 바라고 질문했던 것일까. 부모의 대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는 지난번에 옥희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이 떠올랐다. 자기 자식의 장애 때문에 부모들은 그 자리에서 당장 죽을 수도 있을 만큼 괴로워하고 자책한다고. 그럴 때마다 자신은 부모들에게 항상 너무 자책하지 마시라, 있는 힘껏 아이를 사랑으로 키워주시라는 말밖에 못 하셨다고 했다. 더 좋은 위로가 있었을 것 같다며 말주변이 모자란 게 항상 후회가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맞고 또 맞는 말이다. 저것보다 완벽한 위로와 해결책이 있을까. 선천적으로 장애를 타고나거나 우연한 불행으로 장애를 얻은 것은 자연이 그러하도록 정했을 뿐이다. 일개 한 아이의 부모일 뿐인 두 사람이 감히 거스를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의 미안함과 괴로움이 아니다. 아이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부모의 지극한 정성과 사랑이다. 부모의 사랑은 까마득하고 험난한 이 세계에서 기어이 살아가게 만드는 의지의 원천이다. 장애로 말미암아 온갖 차별과 편견을 받는다 하더라도, 이 세계 어딘가에서는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이 반드시 존재하리라는 믿음이다. 흘러넘치기까지 하는 사랑을 어떻게 해야 더 나눠주고 퍼트릴 수 있을까 고민하게 만드는 선한 힘이다.

 

오늘 거실 소파에 사이좋게 드러누워 80인치 TV에서 방영되는 예능 프로그램을 깔깔대며 시청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면서, 아이는 생각했다. 헤아릴 수 없는 이 사랑과 은혜를 과연 전부 갚을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또 생각했다.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이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있는 힘껏 이 세계와 부딪치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누리고,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사는 것뿐이라고.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며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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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
에세이 [안 들리지만, 그래도] 출간
동치미 출판사 대표
@dongchimi_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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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스타1000

글 | 이동희 ‘동치미’ 출판사 대표

발행 | 2021-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