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이야기

[소리칼럼]장애에 괴로워했던 나에게

친구가 말없이 내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대뜸, “너 장애 있는 거 부럽다.”고 말한다.

요즘 안 했던 생각을 자주 한다. 내 장애가 나의 매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내 장애를 감사한 행운으로 여길 수도 있지 않을까? 이상하게 들리는 거 잘 안다. 장애란 일반적으로 조심해야하고, 부족하거나 열등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친구랑 밥을 먹는데, 친구가 말없이 내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게 아닌가. 부담스러워서 “뭘 쳐다봐.” 한 마디 장난스럽게 뱉었더니 대뜸, “너 장애 있는 거 부럽다.”고 말한다. 내가 들은 걸 믿을 수가 없어서 “뭐?” 되물었다. 오해의 소지가 많은 말인 걸 알았는지 금세 얼굴이 새빨개지며 그가 급히 손사래를 쳤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다녀서, 입모양을 봐야 대화할 수 있는 너는 많이 막막하잖아. 예민한 시국인데 사람들이 마스크를 내리고 네게 얼굴을 보여주고,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하려고 하는 게 뭔가 낭만적으로 느껴졌어.” 내가 아무 말도 안하고 있자,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도 상대의 말을 알아들으려면 눈과 입을 집중해서 봐야 하잖아. 비록 청각장애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상대의 얼굴을 자세히 보며 듣는 너의 그 태도와 습관이 존경스럽단 생각이 들더라. 난 들을 수 있으니까 타인이 건네는 말의 소중함을 자꾸 잊게 되는 것 같아. 너한테서 본받아야겠다고 느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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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시국인데 사람들이 마스크를 내리고 네게 얼굴을 보여주고,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하려고 하는 게 뭔가 낭만적으로 느껴졌어.”

문득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친구가 해줬던 말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녀에게 “너는 내가 왜 좋아? 왜 나랑 사귀는 거야?”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녀는 잠시 부끄러워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넌 매사 열심히 하잖아. 자기 일에 집중 잘 하는 게 너무 매력적이었어. 그리고 넌 내 말을 잘 귀담아 들어주잖아. 나를 존중해주는 기분이 들어서 좋아.” 사실 내가 매사 열심히 하는 이유는 장애 때문이다. 나는 장애가 있기 때문에 항상 남들보다 몇 배 이상 노력해야만 남들만큼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수다 떠는 걸 더 좋아하는 내가 애인의 말을 잘 귀담아 듣는 것은 그녀의 눈과 입을 집중해서 봐야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노력이 그녀에게는 멋져 보이고, 자신을 존중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나 보다.

 

그들의 대답에 도리어 내 얼굴이 더 새빨개졌다. 괜히 민망해서 대충 얼버무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꾸자꾸 생각났다. 나는 항상 열등감만 가지고 있었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내 오랜 소원은 그들의 대답과는 정반대였다. 나는 상대의 얼굴을 보지 않고도 말을 알아듣고 싶었다. 일에 집중하면서, 옆에서 말하는 상대의 말도 같이 들을 수 있는 ‘멀티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게 소원이다. 대충 흘려듣기도 해보고 싶었다. 내가 흘려듣는 건 너무 티가 나거든. 전화 통화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 누구의 도움도 없이 은행 ARS 인증을 받고, 중국집에 전화해 짜장면 한 그릇을 배달 주문할 수 있는 것, 그런 것들도 나의 소원이었다.

사람들의 얼굴을 자세히 봐야만 하는 이 운명을 기꺼이 사랑하기로 했다.
사람들과 사랑과 우정을 나눌 수 있게 해준 장애에 도리어 감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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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괴로워했다. 남들은 당연하게 누리며 사는 것을, 왜 나는 그렇게 간절히 바라고 괴로워하기만 해야 하는지. 장애를 가진 나는 항상 비극의 비련한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그렇게 미워하기만 했던 장애 덕분에 누군가는 내게서 배우고, 나를 존경하고, 누군가는 나를 사랑해준다니. 무조건 단점이라고만 생각했던 장애가 장점으로 보일 수도 있다니,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 괴로워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장애를 갖게 된 것은 물론 아쉽다. 하지만 그게 내 마음 다쳐가면서까지 괴로워할 일이었을까. 장애가 무작정 비참하고 괴로운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장애가 가진 속성이 아니라, 내 마음이 그렇게 느꼈던 것뿐이었음을 깨달았다. 어떤 일이든 마음먹기에 따라 괴로운 일로도, 감사한 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부처께서는 “무릇 사물이나 환경은 ‘공(空; 비어있다)’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괴로운 것일 뿐이니, 괴로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가르치셨는데,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장애 역시 그저 ‘공(空)’할 뿐이다.

 

그러니 어차피 바꿀 수 없다면, 괴로워하기보다는 평온하게 받아들이고 즐기기로 다짐했다. 사람들의 얼굴을 자세히 봐야만 하는 이 운명을 기꺼이 사랑하기로 했다. 타인들의 따뜻한 선의와 배려를 곡해하지 않고 감사히 받기로 했다. 장애를 숨기거나 외면하려 하지 않고, 당당하게 내 매력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사람들과 사랑과 우정을 나눌 수 있게 해준 장애에 도리어 감사하기로 했다.

이동희_프로필_

이동희
에세이 [안 들리지만, 그래도] 출간
동치미 출판사 대표
@dongchimi_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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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스타1000

글 | 이동희 ‘동치미’ 출판사 대표

삽화 | 박현은 일러스트레이터

발행 | 2021-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