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칼럼

[소리 에세이] 장애와 자존심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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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 원인 불명의 고열로 양쪽 청신경이 녹아내려, 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짊어졌다. 이런 내가 평생 떠안고 살았던 고민은 민망스럽지만 연애였다. 이성 관계였고, 사랑이었다.
‘나도 사랑이란 걸 해볼 수 있을까?’
‘사귀게 되더라도 여자친구가 나를 질려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전화 통화를 못하고, 필요할 때 곁에 있어줄 수 없을 것 같은데.’
‘결혼을 하게 되면 배우자에게 대부분을 의지해야만 할 텐데.’
‘보청기를 빼고 자는 중에 아기가 울면? 화재 경보가 울리면? 배우자가 정신을 잃었을 때 내가 119에 전화를 해야 되는 순간이 오면?’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온갖 상황들을 상정하고, 매 순간 애인 혹은 배우자에게 의지하며 무기력할 수밖에 없을 내 모습들을 자꾸 상상했다. 듣고 말하는 것이 인간관계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임을 알기 때문에 한 사람과 깊은 유대를 나누는 행위가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서로 좋아서 사랑을 시작했지만 결말이 끝내 비극으로 끝나게 될까봐 겁났다. 상대방이 나를 질려 할까봐, 비극의 원인이 나에게 있을까봐 두려웠다. 내 장애가 한없이 비참해졌다. 차라리 ‘에이, 평생 혼자 살아야겠다!’ 생각하면서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는 지워지질 않아 괴리감에 괴로워하기도 했다. 죽어도 못할 것 같다.

내 첫 연애는 미지근하고 씁쓸하게 끝났다.
그 이후, 나는 철저히 장애를 숨겼다.
누군가와 깊은 감정을 나누는 일보다,
내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했다.

학창시절에 첫 연애를 했다. 여자친구가 고백했고 내가 받았다. 그러게. 죽어도 못 할 것 같다더니, 연애를 하기는 했다.
나의 막연했던 생각은 확신이 됐다. 너무 어리고 모르는 것이 많아서 모든 게 다 어려웠다. ‘친구’일 때는 하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연인’이 되고 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랐다. 연애에 대해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연인 관계는 친구 사이보다는 더 특별한 무언가가 있으리라고 믿었던 탓일까. 나는 여자친구와 주말에 동네 공원에서 만나 데이트를 하는 날이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침 맞은 지네처럼 뭐든지 수동적이었다. 첫 연애의 추억을 아무리 더듬어 봐도, 여자친구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한 마디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설마 여자친구가 말을 걸어도 알아듣지 못해서 가볍게 흘려듣거나 얼버무린 것은 아니겠지. 동희야. 너 혹시 데이트하는 내내 단 한 마디도 안한 것은 아니겠지?
여러분의 예상대로 내 첫 연애는 미지근하고 씁쓸하게 끝났다. 어쩌면 본의 아니게 이기적으로 보였을 내 모습이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십 년이 훌쩍 넘게 지난 지금에서야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을 그 여성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한다.

 

그 이후, 나는 철저히 장애를 숨겼다. 장애가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굴었다. 연애에 대한 기대가 무너진 것이 충격적이었나 보다. 말도 많고, 장난기가 많던 내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그렇게 무기력해지고 소심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나 보다. 내 장애가 생각보다 연애에 큰 걸림돌이라는 것이 무겁게 다가왔다. 여러 친구들과 함께라면 내 장애에 대한 기대치는 분산되어서 낮겠지만, 서로가 가장 중요한 관계일 수밖에 없는 연애에서는 장애란 여차하면 부담이 될 수도, 상처가 될 수도 있었다.
누군가와 깊은 감정을 나누는 일보다, 내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콤플렉스와 못난 부분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나의 가장 연약한 모습을 남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 중요했다. ‘동희는 청각장애인이지만, 장애인처럼 보이지 않는 것 같아.’라는 말이 듣던 중 가장 커다란 칭찬이었다. 그만큼 무던히도 애를 썼다.

대학교에서 만난 여자친구는 부담스러울 만큼
내게 관심이 많았다.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내 장애를 마주해야만 하는 것이 싫었다.
“그렇게까지 안 해줘도 돼. 그만 물어봐.”
“… 너, 네가 장애가 있는 게 부끄러워?”

대학교에 들어와서 조별과제를 하다가 연애를 시작했다. 똑똑하고 밝았던 여자친구는 부담스러울 만큼 내게 관심이 많았다. 적극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아이였다. 실제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 싶을 정도로 낯간지러운 말도 서슴없이 잘했다.
여자친구는 내게 꼬치꼬치 캐물었다. 태어날 때부터 청각장애를 갖고 있었던 거냐, 부모님도 청각장애인이시냐, 주변에 아는 청각장애인 친구들이 있느냐, 수어로 소통할 줄 아느냐, 보청기는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것이냐, 보청기와 인공와우의 차이점이 뭐냐, 소리가 들리는 데 왜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냐…
그녀는 내가 알아듣지 못해도 대수로워하지 않았다. 자기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처럼 포기하지 않고 눈을 빛내며 꿋꿋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장애가 있는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나는 조금씩 부담감을 느꼈다. 스스로도 장애를 이만큼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깊이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잘 숨길 수 있을까, 평생 그 궁리만 하면서 살았으니 말이다.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던진 질문은 분명 내게도 중요한 질문이었다. 내가 진작 했어야 할 일을 그녀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 비참했다.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내 장애를 마주해야만 하는 것이 싫었다.

 

결국 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질문 세례를 제지했다.
“그렇게까지 안 해줘도 돼. 그만 물어 봐.”
“무슨 의미야?”
“그렇게 물어보지 말라고.”
“…너 네가 장애가 있는 게 부끄러워?”
“무슨 소리야. 갑자기 그 얘기가 왜 나와.”
나는 애써 얼버무렸지만, 눈빛과 안색은 그렇지 못했나보다. 여자친구는 내가 장애에 대해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자친구는 내가 장애를 갖고 있는 것이 애초에 싫었으면 사귀지도 않았을 거란다. 여자친구가 내 고백을 받은 까닭은 장애를 동정해서가 아니라, 조별과제를 위해 모일 때마다 꾸준히 참여하고, 성실하게 준비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전화통화를 못해서 영상통화만 할 수밖에 없었던 게 오히려 좋았단다. 얼굴을 계속 볼 수 있으니 첫 번째로 좋았고, 영상통화를 위해 게으름을 참고 씻어야 하는 것이 자기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 좋았단다. 자기도 어렸을 때 자전거를 타다가 사고가 나서 허벅지에 커다란 흉터가 있다고, 그래서 치마를 절대 입지 않는다고도 말해줬다.

난 너 있는 그대로가 좋아.
네가 좋으니까 귀가 불편한 것도 다 품어져.
나한테는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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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너 있는 그대로가 좋아. 까불까불 장난기 많을 때는 좀 짜증이 나기도 하는데, 자기 할 일 열심히 하고 성실한 게 마음에 들어. 외모도 내 기준엔 합격이고. 네가 좋으니까 귀가 불편한 것도 다 품어져. 나 내일 치마 입고 나올게. 너도 나한테는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역시 낯간지럽지만, 묵직한 한방이었다. 내가 오랫동안 쌓아올린 옹벽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기분을 느꼈다. 허무해야 하는데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들떴다. 이 한 마디를 듣고 싶어서 그렇게 살았나 싶을 정도였다.

 

으레 헤어진 연인들이 그러했듯 우리도 여러 가지 이유로 지금은 헤어졌지만, 이제껏 했던 연애들 가운데 가장 편안했던 연애였다. 내가 온전히 나일 수 있었던 순간들이었다. 나의 가장 여리고 무른 모습도, 나의 가장 강하고 자신 있는 모습도 편안하게 내보일 수 있었다. 그때 진짜 사랑을 느꼈다. 내가 청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먼저 드러내고, 편안하게 있는 그대로일 수 있을 때, 사랑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자신이 취약해질 때까지 허락하는 순간이 바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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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
에세이 [안 들리지만, 그래도] 출간
동치미 출판사 대표
@dongchimi_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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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동희 ‘동치미’ 출판사 대표

삽화 | 김승빈 일러스트레이터 (재능기부)

발행 | 2021-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