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편지

엄마가 내 엄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김효선 감편

※ 이 글은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에 따라 이름이 가명처리 되었습니다.

 

 

때로 어려움은 가족을 뭉치게 합니다. 소중한 사람에 대한 감사함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죠. 얼마 전 사랑의달팽이에 편지를 보내온 김효선(가명)님도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하면서 엄마의 사랑을 깊이 느끼게 되었다고 전했습니다.

 

“우리 엄마가 내 엄마라서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지 모릅니다.”
“엄마는 다시 우리를 만나기 위해선 힘든 것도 처음부터 하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읽다 보면 가슴 따뜻해지는 김효선님의 편지, 함께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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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OO여자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김효선입니다.

 

저는 1살 때부터 원인 모를 고열 때문에 입원도 자주 하고 중이염 수술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열 때문에 청력이 소실되어 4살 때부터 양쪽 귀에 보청기를 착용하게 되었습니다. 언어치료도 매일 다니고 정기적으로 청력 검사도 하며 지내오다가 11살 때 왼쪽 귀 청력이 더 떨어지면서 처음 인공와우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보청기를 한 귀보다 인공와우를 한 귀로 잘 듣다 보니 오른쪽 보청기를 한 귀의 청력이 더 떨어지게 됐고, 성인 될 때까지 청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교수님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처음 수술 했을 때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 인공와우 수술을 다시는 안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수술비 비용이 너무 커서 엄마가 고생하시는 게 너무 죄송한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도 초등학교 때는 수업하는 데 별 불편한 점이 없었는데 중학교, 고등학교를 올라가니 과목마다 선생님이 다르니까 안 들리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자꾸만 수업 진도 따라가는 것도 힘들고 자신감도 없어져서 중학교 때는 학교를 다니기 싫을 정도로 우울증도 심해졌습니다. 친구들에게 다가가지도 못해 왕따를 당했는데, 그런 친구들이 밉기만 했습니다. 그때마다 엄마와 언니가 날 많이 응원해주었고 친한 동생들도 ‘언니는 최고야!’라며 응원을 많이 해줘서 잘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1월에 청력검사를 했을 때, 교수님께서는 기존보다 청력도 많이 떨어졌고 어차피 수술 해야 된다면 보험 적용이 되는 시기에 하는 게 엄마한테도 비용 부담을 덜 드리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수술을 해도 여름방학쯤에나 하려고 했는데 엄마를 위해서 바로 수술하겠다고 결정을 내리고 2주만에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술 일주일 전부터 너무 긴장되고 무서웠지만 가족과 동생들의 응원으로 잘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수술 당일 아침에 양쪽팔에 링거를 꽂고나니 드디어 수술을 한다는 실감이 났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 인공와우며 기존 보청기도 빼고 들어가야 하니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는 게 너무도 무서웠습니다. 그때 옆에 있는 어린 동생도 수술을 하러 온 것을 보고 11살에 처음 수술했던 게 생각이 나서 엄마한테 ‘그때 내가 어떻게 이 아픈 걸 견디고 이겨낼 수 있었을까’ 물어봤습니다. 엄마는 우리 효선이는 그때도 너무 잘 이겨냈다고 이번에도 그럴 거니까 걱정말라고 수술실 앞에서 엄마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술을 마치고 마취가 깼을 때, 엄마를 불러달라고 부탁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엄마를 바로 볼 수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호흡을 열 번 하면 엄마를 불러준다고 해서 숨을 크게 쉬었는데, 문 앞에서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울면서 손 잡아달라고 하고 안아 달라고 했습니다. 엄마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입 모양을 보지 못해 엄마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더 눈물이 났습니다. 엄마가 눈물을 닦아주고 얼굴을 쓰다듬어주면서 손을 잡아주니까 점차 안정이 됐습니다. 내가 울면 엄마도 우니까 더 이상 울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 참았습니다.

 

내가 11살에 수술했던 걸 생각하고 나니 어린 나이에 인공와우 수술하는 아이들이 더 안쓰럽게 생각됐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힘들어도 잘 이겨낼 수 있다”고, “수술하고 나서 더 잘 들을 수 있으니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김효선엄마와딸

엄마가 나보고 건강하게 못 낳아줘서 미안하다고 하실 때가 많습니다. 우리 엄마는 암 수술을 하셨지만 언니랑 저를 정말 잘 키워주셨습니다. 엄마가 내 엄마라서 얼마나 고맙고 다행인지 모릅니다. 나중에 나도 내 아기가 아프면 엄마처럼 할 수 있을까 물어봤더니 엄마는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엄마는 다시 우리를 만나기 위해선 힘든 것도 처음부터 하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나도 엄마처럼 다른 사람들을 많이 도우며 열심히 잘 이겨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아기 때부터 최근까지 아침에 엄마가 귀에 대고 일어나라고 말한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으니 태어나면서부터 못 듣는 것에 비하면 다행이고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엄마가 내 수술 때문에 사랑의달팽이와 통화할 때 상담 선생님이 친절하게 잘 설명해주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BGF복지재단에서 수술비를 지원해주었다고 했습니다. 저희 엄마도 제가 청각장애를 가지게 되면서 장애인단체 사무실에 봉사 다니셨습니다. 그러다가 사회복지사 공부도 하고 지금은 사무국장이 되었습니다. 그런 엄마가 너무 자랑스럽고 우리 엄마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사랑의달팽이와 BGF복지재단도 정말 최고라고,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성인이 되면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사랑의달팽이와 BGF복지재단에도 꾸준히 관심 가지겠습니다.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돕고 싶습니다.

 

아직 머리가 아프고 먹는 것도 힘들지만 회복 잘 해서 학교생활 잘 하고 싶어요. 그래서 대학도 가고 내가 하고 싶은 애견관리사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저처럼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도움도 주고 상담도 해주고 싶어요.
수술 후 바로 무리한 운동을 하면 안 되니까 태권도를 당분간 못하지만 현재 3단까지 땄으니 올해에는 4단까지 따는 게 목표입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모두모두 행복하세요!

 

그리고 엄마랑 통화하며 도와주신 사랑의달팽이 직원분께 많이 많이 감사합니다.

 

김효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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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 대외협력팀 김슬기

발행 | 2021-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