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 Job

청각장애 후배들의 길을 여는 선배가 되고 싶어요

“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한쪽 귀엔 인공달팽이관, 다른 귀엔 보청기를 착용한 이준행 씨가 직장에서 맡은 업무는 고객과의 소통입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수화기 너머 고객의 질문에 차분히 대답하는 모습은 여느 비장애인 직장인과 다를 바 없었는데요.
사회 초년생이 노련한 사회인이 되기까지 겪는 우여곡절은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여기에 더해 청각장애에 대한 편견을 깨며 일하는 것은 곱절의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아픈 만큼 더욱 단단해진 그의 사회생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청각장애인&job소개

‘일 잘하는 준행 씨’의 업무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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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보로탭’으로 인사말을 전하는 이준행 씨

이준행 씨가 일하는 회사 ‘소리를 보는 통로’, 줄여서 ‘소보로’는 음성인식기술을 이용해 청각장애인에게 실시간 문자통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IT 회사입니다. 이준행 씨는 고객지원 업무와 함께 SNS 홍보도 틈틈이 하고 있습니다. 수어 사용 고객을 대상으로 수어 상담을 하는 것도 준행 씨의 일이죠.
흔히들 청각장애인 하면 전화 통화나 대화 자체가 어려울 거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실제로 만나본 준행 씨는 대화하거나 전화 통화하는 데에 큰 불편이 없어 보였습니다. 업무를 할 때도 입 모양을 보여주고, 못 알아들은 부분은 다시 한번 전달해주는 등, 동료들의 약간의 배려만으로도 충분히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준행 씨의 회사생활은 어떨까요? 직장 동료의 솔직한 이야기도 들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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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주연 씨 / 소보로 직원

 

Q. 평소 이준행 씨는 어떤 동료인가요?
책임감이 강하고 적극적이며, 굉장히 세심하고 꼼꼼한 팀원입니다. 항상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늘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청각장애인과 함께 일할 때 더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
저는 청각장애인 분들은 듣는 것이 조금 불편할 뿐이지, 그 외에 모든 일은 비장애인과 똑같을 뿐 아니라 또 어떤 부분에선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준행 씨가 못 들은 말이 있다면 제가 한 번 더 설명하고, 제가 못 챙긴 물건들이나 빠진 일정들은 준행 씨가 챙겨 주며 함께 일하고 있어요. 청각장애인이라 어려운 점, 불편한 점은 없습니다.

업무에 만족하는지 묻자, 준행 씨는 급여도, 일하는 환경도, 특히 청각장애인을 배려하는 직장 문화도 만족한다며 엄지를 척 들어 올렸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좋은 점은 가치 있는 일을,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 준행 씨의 실제 업무 모습을 동영상으로 살짝 엿볼까요?

편견에 상처 입었던 사회 초년생,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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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이렇게 일 잘하는 준행 씨지만 이전 직장에서는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언뜻 보기에 대화도 잘하고, 전화 통화도 할 수 있으니 비장애인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죠.

 

“상사가 업무 지시를 할 때 딱 한 번만 말씀해주시고 다시는 말씀을 안 해주세요. 그러다가 나중에 ‘내가 말했지, 그런데 왜 못 알아듣니?’라며 혼을 내시니까, 서로 답답한 일이 많았죠.”

 

이전 직장의 사람들은 청각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입 모양을 보여주지 않거나 뒤에서 말을 거는 일도 많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업무 지시를 놓치는 일이 종종 발생했고 혼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점차 의기소침해졌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싸한 분위기를 느낄 때면 더욱 마음이 아팠다고 하는데요. 그럴 땐 어떻게 대처했느냐고 묻자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예전 학창 시절에 비슷한 경험을 겪었기 때문에 덤덤했어요. 오히려 ‘이렇게 청각장애인이 사회에 진출하기 위한 장벽이 높구나, 그렇다면 후배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나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기회가 됐어요.”

 

내가 겪은 불편을 나 혼자만의 안 좋은 경험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사회의 변화로 끌어내고자 하는 꿈을 꾸게 되었다는 말에 감탄했습니다.

취업할 때 이것만은 꼭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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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진출을 앞두고 있거나 진로를 고민 중인 후배들에게 어떤 직업, 혹은 직장을 골라야 하는지 조언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꿀팁이랄 것은 없고, 다만 이것만은 꼭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 있는데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원하던 일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스트레스도 덜 받고, 열정도 남다르거든요.”

 

조금 의아해졌습니다. 청각장애인이 사회에 진출하는 동안, 사회의 편견과 제약으로 인해 원하는 직업, 직장을 선택하지 못하는 사례를 종종 봤기 때문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니,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요?

 

“우선 나의 장애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구체적으로 나열을 해보는 겁니다. 저 같은 경우는 첫 번째로 하고 싶은 게 사회복지였고, 두 번째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일을 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사회복지사가 되려고 하니 걸리는 게 너무 많더라고요. 그 사실에 실망하지 않고, 두 번째로 하고 싶었던 ‘청각장애인을 위한 일’이 무엇이 있을지 열심히 찾아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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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식개선 강사로 활동하는 모습

이준행 씨는 이후, 다양한 방법으로 청각장애인을 위한 일들을 시작했습니다. 청각장애인식개선 강사 양성 과정도 참여하고, 사랑의달팽이에서 하는 1대1 멘토링 프로그램에도 두 차례 참여했습니다. 그런 활발한 활동들이 모여 마침내 현 직장, 소보로에 입사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아는 것이 바로 취업 준비의 시작이라고 이준행 씨는 강조했습니다.

막힌 길은 선배가 뚫어줄게~ 팔로팔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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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를 느낄 때도 있습니다. 많은 회사들의 청각장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그로 인해 청각장애인의 취업 기회가 제한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준행 씨의 꿈은, 청각장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확산되고, 현실에 맞는 취업 정책이 세워진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인식의 변화가 가장 중요해요. 회사 임원, 인사 담당자들, 국가 정책을 만드는 분들의 인식이 달라져야 지금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넓은 길을 갈 수 있지 않겠어요? 물론, 짧은 시간 동안 변화가 일어나진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시작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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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에게 제품 설명 중인 이준행 씨

그러기 위해 우선 자신의 인공달팽이관 외부기기도 일부러 눈에 띄는 색으로 골랐다고 합니다.

 

“청각장애는 눈에 잘 보이지 않으니까 보여줘야 해요. 그런데 일부러 외부기기를 밝은색으로 골랐는데도 아이팟 같은 건 줄 알고 몰라보시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 물론 아이팟보다 훨씬 비싼 기기지만요.”

 

청각장애인으로서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고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이준행 씨 같은 분들이 늘어날수록, 청각장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도 점차 달라질 수 있겠죠.

청각장애인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이준행 씨를 사랑의달팽이도 응원합니다!

이준행 씨 인터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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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 대외협력팀 김슬기

발행 | 2020-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