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자Story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아 더욱 특별한 바이올리니스트

지난 4월, 성남아트센터에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이 울렸습니다.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이 연주되는 동안 관객들은 화려한 기교와 낭만이 넘치는 음악에 흠뻑 젖어 들었습니다. 청각장애인에게 소리를 찾아주기 위한 참 필하모닉(champhil.com)의 정기연주회가 진행된 것이죠.
이 음악회에서 재능 기부로 바이올린을 연주한 사람은 세계적인 실력의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님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아 청각장애에 대한 마음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던 한수진 님을 만나 음악과 나눔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후원자인터뷰소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연주하는 ‘월클’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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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니압스키 콩쿨 당시 연주 장면 (출처: 한수진 유튜브)

유튜브에 ‘한수진’을 검색하면 나오는 영상들, 조회수가 심상치 않습니다. 클래식 전문 유튜브 채널인 또모에 출연한 영상들은 조회수가 554만회, 429만회, 316만회에 달하고, 한수진 님 본인 채널에 올린 연주 영상들도 기본 십만 단위의 조회수가 나옵니다.
약력은 더욱 심상치 않습니다. 강남 빌딩 한 채 값이라는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평생 지원받는 최초의 한국인, 15살에 한국인 최초 비에니압스키 콩쿨 입상, 지휘자 정명훈으로부터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는 극찬을 받은 실력자..
하나같이 대단한 약력이지만 실제로 한수진 님의 연주를 들어보면 그 수식어가 결코 과하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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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진 님의 연주 영상에 달린 댓글 중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아 더욱 특별한 연주자

한수진 님은 태어날 때부터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도로를 건널 때 차가 오는 걸 못 알아챈다든지, 뒤에서 누군가 불러도 돌아보지 않아 오해를 산다든지 하는 일도 있었기에 불평할 만도 하건만, 한수진 님은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한쪽 귀로만 듣다 보니 색다른 청음 감각이 길러졌고, 저만의 개성 있는 소리를 찾을 수 있었죠. 결국 모든 것은 관점 차이죠. 장애나 방해물도 사실 나의 특별함을 더 강력하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어요.”

소리 선물, 음악으로 서로 기쁨이 되었던 시간

그런 특별함을 지닌 한수진 님과 사랑의달팽이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덕분입니다. 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지난 4월, 정기연주회에서 얻은 수익금 전액을 청각장애인이 소리를 되찾는데 사용하도록 기부했는데요, 한수진 님 역시 출연료를 받지 않고 참여해 자신의 인생곡인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을 연주한 것이죠.

 

한수진 님에게 어떻게 이런 귀한 나눔의 자리에 함께하게 됐는지 물어봤습니다.

 

“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임형섭 지휘자 님이 제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어요. 이메일 첫 부분에 자신을 런던 왕립음대 후배로 소개하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반가웠고요,

청각장애인을 돕기 위한 공연이라고 취지를 설명해주시는데, 사실 전부터 이런 일을 하고 싶기도 했고 저도 한쪽 귀가 안 들리니까 공감도 가서 연주를 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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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주하는 한수진 님
(사진 출처: 참 필하모닉 유튜브)

당시 연주회에는 연주회 수익금으로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받은 김명자 님이 참석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김명자 님의 사연 –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다시 듣게 될 줄이야)

 

자신의 음악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소리를 찾아줄 수 있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요?

 

소리를 찾아준다는 게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서 너무 감동했어요. 그분은 새로 귀가 열리게 되어 기쁘고, 그분의 기쁨이 저와 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게는 또 큰 감동이 되고, 그렇게 음악으로 서로 기쁨을 나누는 좋은 순환이 된 것이 굉장히 감사합니다.”

 

한수진님은 언제나 미소를 머금고 있습니다. 매 순간 음악으로 기쁨을 나누고, 또 그것을 감사하며 살기에 얼굴 가득, 환한 빛이 가득한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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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차원의 음악을 열어준 고통의 시간

웃음을 잃지 않는 한수진 님에게도 누구보다 깊게 절망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큰 암흑기, 바이올린을 손에서 놓아야만 했던 6년간이죠.

 

한 살에 사고로 머리를 다친 일이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턱관절 통증이 점차 심해졌습니다. 아픔을 참으며 연주를 계속해왔지만 20대 중반이 되자 일상생활까지 힘들어져 수술을 미룰 수 없게 됐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수술하면 1~2년 안에 복귀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재충전의 시간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수술이 잘못되고 재수술을 거듭하다보니 5~6년 동안 재활을 하게 된 거예요.”

 

언제 끝날지 모를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한수진 님은 “나중에 이 시기를 돌이켜 보면 분명 감사할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 믿음대로, 이 6년의 공백기는 한수진 님의 연주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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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후에 크론베르크에 가서 연주를 할 기회가 생겼어요. 당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던 솔리스트 동료들이 제 연주를 듣더니 ‘몇 년간 악기를 못 잡은 거로 아는데 어떻게 연주가 더 좋아질 수가 있느냐’며 신기하다고 말해줬어요. 학장님도 제 음악에 ‘다른 차원이 생겼다’고 말씀해주시고요. 그 힘든 시기가 저에게 준 선물이 그게 아닐까 싶어요.”

 

한수진님은, 견디기 힘든 순간을 보내는 동안 자신의 마음에도 아픔과 고통을 담을 수 있는 깊이가 생겼다고 말합니다.

누구에게나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역할이 있다

바이올린을 잡을 수 없었던 시간 동안 아버지가 하시는 환경 관련 일을 하고, 어머니와 함께 해조류 화장품도 만들고, 통번역 일을 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지만, 결국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은 음악이라는 생각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에게 각자 주어진 기프트, 은사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겐 그 기프트가 바이올린이고요. 그게 왜 주어졌을까, 그건 모두가 각자의 기프트를 서로를 위해 쓰며 더 좋은 세상을 만들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독특한 역할과 능력이 있다는 한수진 님.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이 꼭 필요한 존재이며, 그것은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든, 몸이 불편한 사람이든 마찬가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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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이 있어요.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건 단점이 아닌 그냥 다름이라고 봐요. 남들과 다르다는 거. 그리고 그 다름이 장점이 될 수도 있거든요.
물리적인 소리는 스케치이고 마음속에서 상상하는 소리와 감정은 거기에 색을 입히는 거라고 한다면, 저는 청각장애 친구들이 이 색채를 입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봐요.”

 

베토벤이 초기에 썼던 작품보다 청력을 다 잃은 후 썼던 교향곡 9번이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 것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알고 이것을 더 발전시키려 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꾸지 못했던 아름다운 꿈을 이뤄갈 수 있을 거라고, 한수진 님은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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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영상 | 대외협력팀 김슬기

사진 | 복지사업팀 신정현

발행 | 2021-07-29